20일 윤석열 대통령당선자가 용산 국방부 청사로 새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이를 놓고 예산 책정과 절차, 안보 공백을 둘러싼 논란이 촉발됐지만 용산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청와대 공간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집무실 이전과 함께 용산공원을 신속히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일면 그럴듯하지만 미군기지 반환 절차와 오염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졸속 결정이다.
새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국방부 청사는 공원으로 조성될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면해 있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용산 미군기지는 기지 주변에 6개의 지하철역(숙대입구역, 삼각지역, 신용산역, 이촌역, 서빙고역, 녹사평역)이 있을 정도로 80만평의 넓은 공간이다. 한미 양국이 2004년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정(YRP)을 체결하면서 역대 정부는 모두 금방이라도 용산기지 터를 돌려받을 것처럼 청사진을 그렸다. 2008년까지 이전을 완료한다는 당초 계획은 2016년과 2018년으로 연기됐고 실제 용산기지 반환 협상이 시작된 것은 2019년이다. 현재 반환 면적 203만 m의 10.7%(21만8000m)만 반환됐다. 반환을 위해 협정을 맺고 경기 평택에 새 기지를 제공했는데도 용산기지 반환이 이처럼 지연되고 있는 주 원인은 기지 내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 공방 때문이다.
문재인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미군기지를 반환받을 때마다 미군기지 오염정화 책임, 환경관리 방안,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소파) 개정에 관한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발표하는 것도 협상의 쟁점이 환경문제에 있음을 의미한다. 주한미군 기지는 환경원칙의 사각지대에 있다. 사전 예방 원칙, 오염자 부담 원칙, 정보 공개 면에서 예외적으로 사용돼 민주적 통제가 필요한 곳이다. 기름 유출, 폐기물 매립, 소음, 생화학실험 등 미군 주둔지역 주민들은 갖가지 생활피해를 호소한다. 2001년 소파 환경 조항이 신설됐으나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조항이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거세다. 더욱이 용산은 한국의 미군기지 중 가장 많은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해 토양 지하수 오염이 심각한 지역이다. 차기 정부는 용산 반환 협상 과정을 통해 미군 측에 정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군기지 내 정화기준 정량화, 국내환경법 적용, 정보공개 등 전국 미군기지에 적용하는 환경정책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조속히 반환받아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계획은 미군기지 반환 절차와 사회적 과제에 대한 이해의 뒷받침이다. 집무실 이전을 위해 용산공원 조성을 졸속 추진하면 미군기지 환경정책을 개선할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용산공원 조성의 주체인 국토교통부는 2027년까지 용산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반환 시기가 늦춰져 반환 시점(n년)으로부터 7년 후 공원 조성 계획을 변경하여 고시했다. 즉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상 토양정화, 공원계획에서 실시까지 7년 이상 걸린다는 점에서도 용산공원을 국민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산 캠프 하야리아, 춘천 캠프 페이지, 의정부 캠프 시어스 등 과거 반환된 미군기지 상당수가 오염으로 인해 새로운 공간 조성에 차질을 빚고 있다. 용산이 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용산은 100년 이상 외국군이 주둔해 온 공간이자 앞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의 대규모 녹지 공간으로 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산에서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 녹지축과 동서수경축인 한강이 만나는 중심에 있다. 대기질 악화와 폭염, 기후변화 등으로 답답한 대도시 서울의 숨쉬는 폐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오염문제 해결, 생태축 연결과 복원, 근현대사의 의미기록 등 용산을 둘러싼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지부진했던 용산기지 반환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은 좋지만 임기 내에 공원을 사용하기 위해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자에게 당부한다. 집무실 이전에 대한 그 의지를 용산 미군기지 반환 협상에서도 발휘하기 바란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미군기지 환경문제에는 환경주권과 국민의 건강권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