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어머니가 있다. 아들은 자폐증 스펙트럼으로 진단받은 여덟 살짜리 아이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완치를 고집했다. 하루를 쪼개 각종 치료시설을 전전하는 게 모자의 하루 일과였다. 엄격한 어머니 교육은 때로는 학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그 아들이 죽었다. 살인 용의자로서 모친이 특정되었다. 아들이 죽던 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오늘 끝내자!고 쓴 어머니의 메모가 발견됐다. 자폐 아들을 죽인 비정의 어머니 법정의 말은 특유의 명료함으로 앞뒤가 맞는 살인의 서사를 완성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앤지 김(한국명 김수연)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미라클 크리크는 죄와 죄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명료함 너머, 때론 추하고 너덜너덜해지기도 하는 인간의 선의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미국 버지니아의 작은 마을 미라클 크리크,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는 고압산소 치료시설 미라클 서브마린에서 발생한 화재와 함께 시작된다. 이날 사고로 치료를 받던 자폐아동의 헨리와 다른 아동의 어머니 키트가 숨졌다. 화재 원인은 담뱃불에 의한 의도적 방화로 밝혀진다. 처음엔 고압산소 치료가 비과학적인 자폐 치료이자 아동학대라고 주장한 시위대가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조사가 계속될수록 화살은 의외의 곳으로 향한다. 그날따라 미라클 서브마린을 떠나 밖에 혼자 있던 헨리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작가 앤지 김은 서두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에서 "책 속의 무수한 맥락이 내 삶의 궤적과 연결된 매우 사적인 책"이라고 <미라클 크리크>를 소개했다. 그는 첫 직업이었던 변호사 경력을 십분 활용해 소설을 치밀하고 현실적인 법정 드라마로 그려냈다. 화재 1년 뒤 나흘 동안 진행된 살인 재판에서 미라클 서브마린을 운영했던 유 씨 가족을 비롯해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특수아동과 보호자, 불임 부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설은 추리물의 형식으로 묻는다. 이 가운데 누가 범인인가. 답변은 문학적이다.
특수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황량한 내면에서 한국계 미국 이민자 가족들의 갈등과 분투, 대체의학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실함과 비뚤어진 마음까지.명백하고 확실한 증언만을 원하는 법정에 차마 내놓을 수 없는 비밀의 내막이 줄줄이 벌어진다.
내막은 얼핏 보기 흉해 자세히 보면 슬프다. 예를 들어 그날 화재로 뇌성마비의 딸 로사와 함께 죽을 뻔한 여성 테리사는 엘리자베스가 방화 용의자로 지목된 법정에서 섹스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몇 년 동안 치마를 입은 적도, 혼자 있던 적도 없던 테리사가 해방감을 느끼는 방식이다. 테리사는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의 어머니이자 간호사로 11년을 살아왔다. 재판은 딸에게 장애가 생긴 뒤 처음으로 혼자서 자유를 줬다. 법정에서 만난 다른 특수아동 엄마들도 여기 오기가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테리사는 어느새 비정한 어머니로 언론에 도배된 엘리자베스와 자신의 거리를 확신하지 못한다. 엘리자베스와 함께 아이가 죽는 상상을 속삭였던, 그리고 다시 한 번 아이에 대한 사랑을 맹세했던 어느 날의 기억은 죄와 죄가 아닌 것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
감히 판결할 수 없는 쓰라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1980년 11세 때 서울에서 미국 볼티모어로 이민했다. 치안이 취약한 시내에서 일하는 부모와 떨어져 이모와 함께 지냈다. 한국에선 똑똑한 소녀였지만 미국 중학교에선 말도 듣지 못한 이방인이 됐다. 그런 기억이 소설 속 유씨 부부와 이들 17딸 메리의 비극을 가져오는 재료가 됐다. 와일드 구스 파더, 즉 기러기의 아버지로 4년간 버텨온 남편 박, 미국에서 혼자 키운 딸과 심적인 이별을 겪은 영구, 학교에서 창캐라는 놀림을 받으며 낯선 집에서 밤늦도록 엄마만 기다리던 딸 메어리. 더 나은 삶을 위해 찾아온 미국은 그들의 내면에 피해의식과 열등감, 경력단절과 가족와해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들은 미라클 서브마린을 방문하는 특수아동 가족에게서 은밀한 우월감을 느끼고 동시에 그 감정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 마음을 법정에 세운다면 우리는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인생은 항상 과정에 있다. 취약계층의 과정은 특히 흔들린다. 때론 몸을 바쳐 사람을 구하지만 뜻하지 않게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하는, 연약하기 때문에 악당 얘기다. 미라클 크리크는 2020년 에드거상 수상작답게 설계된 법정 추리극으로 살인의 전모를 흥미진진하고 확실하게 풀어낸다. 불공평한 비극 앞에서도 선량해지려고 애썼지만 결국은 실패하는, 그래도 반성하고 책임지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의 기적을 그렸다. 악인을 엄하게 단죄한다는 의미에서 참교육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다. 소설들은 단죄에 앞서 서로 취약함, 개선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