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명의 인도 주부가 자살로 목숨을 끊은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매우 도발적인 이 질문은 최근 영국 BBC 인터넷판 특집기사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BBC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다양한 심층취재를 실시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이번에는 인도 내 가정폭력 실태와 기혼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인도 하루평균 61명 주부 극단적 선택
BBC 보도에 따르면, 작년에 인도에서 자살한 사람은 15만 3,052명입니다. 이 중 주부가 14.6%(22,372명)를 차지하는데 하루 평균 61명, 약 25분에 1명의 주부가 자살한 셈입니다.
작년이 특수한 경우였을까요? BBC는 인도 국가범죄기록국(NCRB)이 발표한 통계로 매우 의미 있는 흐름을 포착했습니다.
NCRB가 자살 관련 자료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매년 2만 명 이상의 주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오고 있으며 2009년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주부의 수가 25,092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인도 정부의 이 자료는 자살의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 않지만 인도에서 주부의 자살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통계를 통해 입증된 셈입니다.
■전문가들 "가정폭력, 억압적 결혼생활 등이 원인"
정신과 전문가들은 인도 내 상당수 주부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최근 인도 정부의 조사에서는, 기혼 여성의 30%가 배우자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여성과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구습과 전통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조혼 등도 문제가 됩니다.
인도 여성의 대부분은 법적 결혼 연령인 18세가 되자마자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의 일부 교육을 받은 여성을 제외하고는 10대 청소년이 결혼한 뒤 곧바로 집에서 전업주부가 되어 세 끼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도인들이 대부분 믿는 힌두교의 특성상 절기에 맞는 종교행사가 있는데 이에 맞는 음식과 옷을 준비해야 하는 것도 주부의 몫입니다
이 때문에 인도 여성들은 지금도 집권자인 인도 총리를 상대로 "집안일을 남성도 해야 한다"는 평범한 주장을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중년 이후 여성의 우울함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에 대해 임상심리학자 벨마쉬리바 박사는 "주부들의 경우 아이들이 커서 집을 나간 뒤 '빈집증후군'에 빠지는 경우가 많고 우울증을 유발하는 갱년기 증상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습니다.
■상담 등 "충동적 선택 막아야" … 코로나19 관련 제한조치도 영향
결국 인도국 주부의 자살에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사회문화적 변화가 필요하고, 여기에 시간이 걸린다면 다양한 조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예방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우울함을 표현하는 여성들 곁에 누군가 귀기울여 문제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절명의 순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전문의 스미트라 파타레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신이 누군가를 (극단적인 선택에 앞서) 조금이라도 멈출 수 있다며 많은 인도 여성의 선택은 충동적으로 보이지만 집에서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면 곧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주부들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상황은 최근 여성에게 많은 제약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차이탈리 싱하는 "가정폭력 밑에 있는 많은 여성들이 상담서비스 같은 비공식적인 지원 덕분에 정신건강을 유지해 왔다"며 "하지만 최근(코로나19) 전염과 이로 인한 사회적 거리 만들기 등이 주부들의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통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인도 주부들은 남편이 떠난 뒤 안전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와 실업이 늘면서 그 공간마저 사라졌다고 한다. 여성들로 외부 일감이 줄어든 것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인도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선택 방지를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심리상담보다 중요한 것이 신뢰성 있는 정부 통계조사라고 역설한다.
정부 통계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 원인으로 가정폭력이 지목되고 있는데, 이런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 인도인들의 특성 때문에 숨겨진 숫자가 있을 수 있는, 즉 실제로 폭력을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의 수는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인도, 여성 법정결혼 최저연령 18세→21세로
이런 자살 관련 통계를 직접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인도 정부도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성 인권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와 함께 여성 법정 혼인 최저 연령을 21세로 상향 조정할 예정입니다
최근 더 힌두 등 인도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인도 연방정부 내각은 이런 내용으로 여성의 혼인 법정 최저 연령을 고치기로 했습니다.
관련 수정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공식 효력을 얻게 되면 인도의 법정 혼인 최저 연령은 남녀 모두 21세로 동일하지만 지금까지는 남자만 21세였습니다.
이번 조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정부가 딸과 여동생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며 혼인 최저 연령의 수정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탄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령 상향 조정'에 따라 주부의 인생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력 있고 사회경험을 많이 한 여성이 늘어나면 인도 가정 내 여성의 지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