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백만 년 전 유인원의 선조들이 발효된 과일을 골라 먹던 데서 비롯됐다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이 입증됐다. 원숭이가 알코올(에탄올)이 함유된 과일을 즐겨 먹고 소변에서도 알코올의 2차 대사물질이 검출돼 가설이 과학적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 따르면 노스리지 캘리포니아 주립대 인류학자 크리스티나 캠벨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거미원숭이(Atelesge of froyi)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영국 왕립학회가 발행하는 왕립학회 오픈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발표한 것이다.
연구팀은 파나마 바로콜로라도에 사는 거미원숭이가 먹다 남은 과일을 수거·분석해 알코올 농도가 1~2% 정도임을 확인했다. 이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의 절반 수준이다. 익은 과일당을 먹는 발효균을 통해 자연발효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함께 거미원숭이 6마리의 소변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5마리의 시료에서 알코올의 2차 대사물질이 검출됐는데 이는 알코올이 그대로 지나가는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캠벨 교수는 "야생 영장류가 인간의 간섭 없이 과일 속 에탄올을 섭취한다는 점을 분명히 처음 보여줬다"고 말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인간의 알코올 소비가 무르익은 과일을 통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영장류의 과일 섭취 행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술 취한 원숭이의 가설은 UC버클리의 생물학자 로버트 도들리 박사가 2014년 <술 취한 원숭이: 인간은 왜 술을 마시고 남용하는가>(The Drunken Monkey:Why We Drink and Abuse Alcohol)라는 저서에서 처음 제시했다.
영장류를 좋아하는 과일 중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알코올 농도가 7%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밝혀졌지만 책을 낼 당시에는 이런 통계자료는 갖고 있지 않았다.
거미원숭이가 냄새를 맡고 잘 익은 것만 골라 먹는 호보나무 열매는 열대과일이다. 거미원숭이 주식으로 중남미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발효주를 만드는 데도 이용돼 왔다.
캠벨 교수는 "원숭이는 칼로리 섭취를 위해 에탄올이 든 과일을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열량은 에너지를 의미하는 만큼 발효된 과일을 통해 발효되지 않은 것보다 많은 칼로리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조상들도 원숭이처럼 처음에는 칼로리 섭취량을 늘리기 위해 에탄올이 있는 잘 익은 과일을 골라 먹었지만 액체에 알코올을 정제하고 심리적 쾌락적 효과를 노려 알코올 남용에 빠졌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원숭이도 발효된 과일을 먹고 인간처럼 취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두들리 교수는 "따는 수준에 이르기 전에 과육으로 배가 채워져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발효된 과일을 통해 먹이에 대한 항균 효과나 효모균 활동, 사전 소화 등 생리적 이득을 취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알코올에 끌리는 경향이 영장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생각은 알코올 남용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캠벨 교수는 이 같은 생각이 확산되자 알코올의 과소비는 당뇨나 비만처럼 영양과다질환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