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20여 년 전 정영주 작가가 직면한 현실이었다. 1997년 프랑스 에꼴 데 보자르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옮겨 작품 활동을 하던 정 작가는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귀국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작가로 자리잡지 못한 시점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이후 10년간 고난은 계속됐다. 그림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지인들은 떠나고 돈조차 없어졌다. 살아서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이 절로 떠올랐다. 정 작가의 눈에 낡고 초라한 마을이 들어선 것이 그 무렵이었다. 드문드문한 기와지붕, 갈라진 시멘트벽, 녹슨 문. 빼곡히 붙어 있는 판잣집은 도시의 화려한 빌딩들과 비교돼 마치 작가 자신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 시절 부산 빈민가에 살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