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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개미지옥 몇 백만원짜리 할머니 명품이 뭐야

임영재 2023. 5. 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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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츠플리즈 정말 개미지옥이네요“

지난 1일 오전 11시 이세이미야케 일본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에 5월 신제품이 나오자 구매자들이 한꺼번에 몰렸습니다. 구입 시작 5분 만에 인기 상품은 거의 품절.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구매 전쟁'이 치열했습니다. 바지 하나에 20만~120만원, 재킷 하나에 38만~250만원에 달할 정도로 비싼 제품인데 이 브랜드 옷은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구김으로 쉽게 늘어나는 박시한 티셔츠, 몽페바지를 연상케 하는 와이드 고무줄 팬츠, 라인을 덮는 긴 길이의 스커트와 루즈한 원피스...

이세이미야케 플리츠 플리즈복의 특징입니다. 이 브랜드 옷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 패션', '청담동 사모 패션'의 대명사였습니다. 편하긴 하지만 자칫 부풀어 보이고 일부 광택이 늙어 보인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2030세대가 플리츠 플리즈 옷을 찾고 있습니다.

 

 

 

 

국내에 잇세이미야케 플리츠 플리즈를 수입하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4월 23일 기준) 이 브랜드의 매출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30% 가까이 늘었습니다. 특히 2021년부터 SSF샵 등 온라인몰로 유통을 확대하면서 젊은 고객이 크게 증가했다는 설명입니다. 올 들어 SSF샵에서 플리츠플리즈를 구매한 신규 고객은 무려 2000여 명 늘었습니다. 남성용 브랜드 '옴므 프리세이 미야케'도 찾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 브랜드의 신상품은 매달 1~2회 출시되지만 입고와 동시에 '완판'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신제품이 나오면 기존에 출시되던 상품은 단종되지만 일부 인기 디자인은 온라인 중고거래 시장에서 웃돈까지 붙어 팔릴 정도입니다. 지난해 10월 나와 큰 인기를 끌었던 긴 기장의 랩스커트는 정가 70만원에 달할 정도로 가격대가 높지만 구매대란이 일어나 프리미엄(추가금)을 내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품귀현상을 보였습니다. 판매된 지 1년 가까이 됐지만 요즘도 베이지나 블랙 등 인기 색상은 10만~20만원을 더 줘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습니다.


백화점 매장에서도 신제품이나 인기 제품이 나오면 마치 샤넬 롤렉스처럼 오픈런(점포 개점 시간을 기다려 열렸을 때 달려와 구입하는 것) 사태가 벌어집니다. 플리츠플리즈는 지난해 간암으로 타계한 일본 출신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미야케가 1993년 선보인 브랜드입니다. 이세 미야케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하면 떠오르는 검은 터틀넥 디자이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야케가 개발한 플리츠 플리즈는 Plats(플리츠 주름)라는 이름처럼 옷 전체에 얇은 주름이 있습니다. 대형 원단을 먼저 재단하고 모양을 잡아 바느질한 후 특별 가공을 합니다. 마치 아코디언처럼 자라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국내에서는 멋쟁이로 유명한 가수 강민경이 플리츠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고 '완판 행렬'을 보인 바 있습니다. 농구스타 허훈이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골지'(골이 있어 신축성이 좋고 물빠짐이 빠른 원단)라고 부르며 주름패션 찬사론을 읊자 '허훈패션', '골지패션' 등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허훈의 의상은 플리츠플리즈의 남성 라인인 옴프리세였습니다. 마른 체형의 연예계 대표 소식통 코드쿤스트부터 패셔니스타 배우 봉태규까지 두루 애용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방일 당시 김건희 여사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로부터 이세 미야케 옷을 선물받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처럼 명품 시장에서도 '할매+밀레니얼'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맞아 편안한 의상을 찾는 트렌드가 주효하면서 주목받은 패션 트렌드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선호하는 명품의 특징은 '궁극의 편안함'. 주로 소재가 우수하고 사이즈가 넉넉해 입은 듯 안 입는 느낌, 신은 듯 안 입는 느낌을 주는 것이 장점입니다.

 

 

 

140만원대 롤로피아나의 썸머참스워크 로퍼도 20~30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할아버지 신발입니다. 스웨이드 커프스킨 재질로 만들어진 이 로퍼는 부드러운 착용감으로 사계절 신는 신발로 부유층 중장년 세대에게 인기가 높았던 제품이지만 최근에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사망 당시 입었던 점퍼 브랜드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비슷한 시기 불거진 '땅콩 회항' 논란 당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착용해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전직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즐겨 찾는 것으로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마치 동네 마실에 나온 할머니가 들 법한 디자인의 407만~449만원짜리 에르메스 '피코탄' 핸드백도 명품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편안한 제품으로 유명합니다. 말 사료 봉지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는 이 가방은 지퍼나 단추가 없는 장바구니 같은 자연스러운 모양과 구김이 잘 가는 가죽 소재가 특징입니다. 심플한 디자인에 실용성까지 갖췄다는 게 소비자들의 평가입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부족해 수십 번 오픈런을 해도 구하기 힘든 가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업고 품절 사태를 일으킨 70만원짜리 에르메스 스카프도 대표적인 할마니얼 명품 아이템입니다.

 

 

 

 

 

30대 직장인 최모 씨(34)는 최근 이세이미야케 의류 여러 벌과 로로피아 로퍼 에르메스 스카프 등을 사면서 할머니 명품을 대량으로 구입했습니다. 최씨는 "남들 눈에는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몸에 들인 옷과 소품 가격이 거의 1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돈을 많이 썼다"며 "편안하지만 왠지 소재나 디자인이 은근 고급스러운 게 할매닉의 완성"이라고 말했습니다. 명품업계 관계자도 "최근 명품시장에서도 활동성과 실용성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며 "이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적극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비자는 옷 한 벌로, 또는 가방 하나로 딸-어머니-할머니 혹은 아들-아버지가 함께 착용하기도 합니다. 30대 한모 씨(35)는 60대 어머니와 80대 할머니와 플리츠 플리즈 옷을 공유합니다. 한씨는 "누가 입어도 잘 맞아 실용성을 갖췄다"며 "최근 주름치마를 입고 마트에 갔는데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옷이 예쁘다고 구매처를 물었다"고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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