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이어티

먹고살아 월급 216만원 평균 인생 포기

임영재 2023. 6. 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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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기준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은 400만1천원, 중위임금은 314만6천원이었다.(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저축과 부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혼 1인가구 지출만 집계한 실태생계비는 241만원이었다. 하지만 <한겨레>가 22일 확보한 최저임금 130% 안팎 민주노총 조합원 17명의 4월 한 달 가계부를 보면 월평균 229만7109원을 벌어 219만5531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이 마트, 콜센터, 돌봄, 학교비정규직 등 저임금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1156명에게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월평균 186만원(세후)을 번다고 답했다. 이들은 '저임금으로 무엇을 포기했느냐'고 묻자 '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노후 대비와 저축' '만남과 인간관계'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 등을 적었다.

이들 1173명의 자료에서 엿보이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로서 한국 사회 평균과의 격차가 벌어질 때 느끼는 미묘한 불안이다. 지난해 저임금 노동자 비중,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등 임금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익숙한 경계를 따라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여 만에 악화됐다. 아직은 '징후' 정도로 볼 여지도 있지만 불평등 완화, 사회적 포용성 확대, 그를 통한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합의된 지향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관련 논의는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다. <한겨레>는 이들 중 이번 조사에 참여한 청소, 경비, 판매, 돌봄, 제조 분야 저임금 노동자 5명을 만났다.

김재원 씨(49)는 2023년 선진국에 이른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생활여건을 밥 먹는 것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 걱정하지 않는 삶으로 규정했다. 재원씨는 지난 4월 한 달간 경기 부천시의 한 시립도서관에서 하루 8시간 경비업무를 하면서 휴일근무수당 등을 더해 216만2410원(세후 기준)을 벌었다. 그리고 201만6650원을 지출했다. 14만5천원 정도 흑자다. 스스로 "그래도 딱 먹고살 만큼은 버는 것 같아 나보다 더 힘든 노동자가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은 정말 좋았을까?

2013년부터 10년 새 2배(4360원→9320원)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이 최소 상용직으로 하루 8시간 일하는 1인 가구 노동자들에게서는 '근로'와 '빈곤'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간신히 떼어낸 것은 사실이다. 재원 씨도 월급 216만원에 살 수는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재원씨가 한국 사회 평균, '먹고 관계 맺는 데 걱정 없는 삶'을 말하며 공을 들인 단어는 '걱정'이다. 물가는 오르고 임금 인상은 더디다 보니 재원씨는 최근 걱정하는 횟수가 늘었다. 재원 씨의 잣대에 따르면 '평균 삶'에서 한 발짝 떨어진 셈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돌이켜보면 심각한 부분도 있다.

 

 

 

 

 


긴축: 점심 한 끼와 과일


서비스연맹이 저임금 사업장 노동자 1156명에게 '물가 상승에 따라 가장 먼저 줄이거나 줄이려는 항목'을 물어 1, 2, 3순위에 가중치를 부여해 점수를 매겨보니 1위가 외식비, 2위가 식료품비였다. 재원 씨의 식사비용도 소박하다. 4월 한 달간 딱 25만원을 썼다. 주로 점심 외식비로 15만원, 식료품비로 10만원을 지출했다. 노력의 결과다. 줄일 수 있는 게 분명하잖아요. 주변에 1만원 이하로 밥 먹을 수 있는 식당을 계속 찾아놨어요. 별 약속이 없을 땐 건너뛰기도 하고요." 재원씨는 일터 주변 5천원짜리 세무서 구내식당을 즐겨 찾는다.

식사는 별거 아니라 일반적인 긴축의 대상이다. 다만 재원씨에게는 '불규칙한 식사'가 남긴 질병이 있다. 2016년 '크론병'(소화기 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소화물 택배 일을 할 때 끼니를 자주 거르더라고요. 그 전까지만 해도 계속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택배 일을 할 때 돈을 제일 잘 벌었는데." 의사는 병에 걸린 이유로 불규칙한 식사를 꼽았다. 재원씨의 4월 카드 지출 내용에는 4일과 5일 점심 지출 기록이 없다. 10일에는 2천원짜리 커피를 한 잔 사 마신 기록뿐이다. "수술하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부담스러우니까요." 지난해 기준 외식비 물가는 1년 전보다 7.7% 올랐다. 재원 씨의 임금은 1년 전보다 2% 올랐다. 그만큼 걱정이 커졌다.

초등학교 청소노동자 김양자 씨(53)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삶은 과일을 편하게 사먹을 수 있는 삶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과일을 좋아해요. 마트에서 조금씩 사면 더 비싸서 박스째 사먹었는데... 우리만 먹는 게 아니라 여기 선생님들 나눠주기도 하는데." 양자씨는 월 194만7740원을 번다. 4월 그중 11만7천원을 과일 구입에 써버린 배경을 길게 설명했다. 마침내 양측도 평균 포기를 선언한다.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면 과일을 제일 먼저 줄여야겠네요"

 

 

 

 

 

 

 

포기 : 고양이와 제사상


서비스연맹은 설문조사 답변에 주관식 문항을 담았다. '최저임금 수준의 생활에서 포기한 것'을 쓰도록 했다. 가족이 31번, 자녀가 14번, 부모가 10번, 지인이 5번 썼다. 관계에 드는 비용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재원 씨는 당초 2인 가구였다. 3년 전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포기했지만 명단에서 재원 씨도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줄였습니다."

현재도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를 보낸 지 2년 만에 고양이 구미를 만났다. 4월 29일 고양이 먹이에 5만4천원을 썼다. 처음 키울 때는 좋은 먹이를 줬는데 점점 그러지 못해요. 괜히 내가 키워서..." 쿠미와의 관계가 무겁다. 더 좋은 것을 많이 주지 못할 때 느끼는 안쓰러움이 있어요. 제 자식이었다고 생각하면 아버지로서 정말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 고통을 울산의 한 화학공장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강유현 씨(37)가 말했다. 아이가 4살이다. 내 옷은 전혀 사지 않고 아끼는데 아들 옷을 잘 사주지 못해요. 그래도 아들이 먹는 것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유현씨는 주 52시간을 채우고 일할 때 수당 등을 합쳐 281만원을 번다. 그나마 6년 근속한 덕분에 최저임금 시급보다 많은 시간당 1만900원을 받아 가능한 임금이다. 저임금을 극복하고자 주 52시간을 꽉 채우고 오랜 시간 노동하는 만큼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것 또한 "죄송하다"고 말했다.

미래: 빚과 치과


서비스연맹이 '최저임금이 250만원으로 올랐을 때 가장 원하는 지출처나 하고 싶은 일'을 묻자 49.6%가 '부채 상환'이라고 답했다. 저축이 18.3%로 뒤를 이었다. 최저임금 결정 시 생계비 반영의 기준이 되는 비혼 1인 근로자 실태생계비는 부채와 저축 같은 금융비용과 미래 대비는 담지 않는다.

재원씨의 한 달 지출 중 가장 큰 부분도 주택담보대출 이자다. 지난 2018년 어머니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려고 집을 사느라 생긴 빚으로 변동금리다. 재원씨는 "4년 전에는 한 달 이자 49만원을 냈는데 한때 74만원까지 나왔지만 지금은 69만원"이라고 말했다. 고금리는 고물가보다 더 큰 부담이다. 민주노총 가계부 조사에 참여한 저임금 노동자 17명의 가계부채 평균은 8225만원이었다.

5천원짜리 식당을 주로 이용해 가끔 밥을 거르고 고양이 사료를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바꾸고 엄마 차례상에 올릴 음식 가지 수를 줄인 재원씨 한 달 살림 결과 14만5천원이 남았다. 그의 목표 저축액은 월 30만원이다. 치아가 많이 썩었는데 견적이 230만원 나왔어요. 모아둔 돈이 없어서 치료는 그냥 포기했어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저축을 30만원이라도 하면 되는데…." 예기치 못한 일상의 사건과 겹쳐보니 '딱 먹고 살 만큼은 버는 것' 같았던 재원씨의 한 달 월급이 갑자기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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